결혼과 육아. 세상에 대한 반항심, 그리고 나의 두려움으로 거부해온 두 가지 과제. 이제와 생각해보면 나는 이것으로부터 달아나려한 만큼 얽매여있었던 듯 하다. 늘 '이게 아니면 어떻게 살래?'라는 질문에 맞딱드려야했고, 변명하듯 읊어댄 말들이 어느새 나를 규정하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동거를 시작하니 결혼과 육아가 본격적인 문제가 되었다. 대안적 관계를 꿈꿨으나, 동거는 대개 결혼과 육아를 위한 준비 단계로 받아들여졌고, 특히 양가 부모님들의 기대에 어떻게든 답변을 해야 했다. 이렇게 된 거 누군가에게 늘어놓는 변명이 아닌, 내가 누구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내가 가진 반항심과 두려움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들여다보기로 했다.
결혼은 형식적인 문제였고, 육아가 앞으로의 삶을 좌우하는 키워드였다. 내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부모가 아닌 채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까? 육아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많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이런 내가 육아를 했을 때 마주할 문제는 무엇인지 고민했다. 반면 부모가 아닌 삶을 상상하기에는 정보가 부족하여, 딩크족의 이야기를 읽으며 참고했다. 새롭고 특별한 깨달음은 없었으나 문제를 명료하게 바라보니 선택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것만이 누릴 수 있는 행복을 좇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내가 나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올해초, 임신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시도해보고 안되면 딩크로 살아가도 좋다는 데에 짝궁과 합의했다. 임신이 되면 육아에 유리한 결혼제도를 택해야 한다는 데에도 합의했다. 자연임신이 빨리 될거라 생각하지 않아 나이를 생각해 하루라도 빨리 시도해보자고 했는데, 얼마 되지 않아 임신이 되었다. 당시엔 기쁘기보다 당황스러움과 걱정이 몰려왔다. 당장에 소화해야 할 학교 일정이 가장 걱정이었다. 예측과 통제가 불가능한 것이 육아라는 걸 시작부터 알려주는 듯 했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의 배려 속에 평소와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입덧 증상은 심하지 않았지만 평소에 즐기지 않던 과일이나 야채가 땡기고, 조금만 과식을 하면 구토를 하곤 했고, 자주 졸음이 쏟아졌다. 그래도 도보 들살이, 이동학습, 대만 일정, 작은 결혼식, 하반기 일정까지 별 탈없이 소화할 수 있었다. 집안일과 출산준비는 짝꿍이, 출산휴가 업무는 동료들이 부담해주었다. 감사한 일이다.
임신 사실을 자주 잊어버리고 살다가 병원에 가면 아기는 시간을 먹고 자라있었다. 자궁 안에 작은 점이었던 생명체에 심장이 생기고, 머리와 몸통, 팔과 다리를 갖춘 인간의 형태가 되어 있었고, 배가 볼록하게 불러올 때 쯤엔 꿈틀거리는 태동이 느껴졌다. 어느새 이 작은 생명체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처음 듣는 심장소리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머리와 몸통 뿐인 초음파 사진을 보며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잘 자라고 있을까 하는 걱정과 안도, 어떤 사람일까 하는 궁금증과 기대, 무엇보다 깜짝 선물처럼 찾아와 무럭 무럭 자라준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이런 게 부모가 되어가는 걸까, 처음 느껴보는 신기한 감정들이었다.
임신 소식을 알리자 당사자인 나보다 주변 사람들이 더 기뻐해주었다. 나는 누군가의 임신과 출산에 이토록 관심을 보였었나 반성하게 될 만큼 많은 축하와 응원을 받았다. 임신 덕분에 내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것, 이 사람들이 내가 선뜻 육아를 선택할 수 있었던 자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장 반가워한 사람은 물론 부모다. 내가 평생 하지 못한 효도를 나의 아기가 할 수 있다는 걸 매일 실감하고 있다.
이제 임신 막달, 곧 출산을 앞두고 있다. 혹여 빨리 나올까 미뤄둔 일들을 처리하며 바쁘게 보낸 시간이 무색하게, 예정일이 지나도록 진통이 없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된 그 때처럼, 육아는 계획대로,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벌써부터 알려주나보다. 그래, 너의 속도대로, 건강하게 만나자. 적당한 가면을 골라 쓰고 잘난 척하며 살아왔던 내가, 앞으로 얼마나 깨지며 성장할지 두렵고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