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온지 3주, 치앙마이에서 엄마와 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나는 가족여행을 삼일 앞두고 빠이에서 치앙마이로 돌아왔다. 혼자 머물며 그간의 여행을 차분히 돌아보고팠는데 도착하자마자 병원부터 찾아야 했다. 이틀전부터 다리 곳곳이 심하게 가렵고 붉은 반점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모기에 물렸다기에는 너무 많고, 두드러기라기에는 심하게 가려웠다. 다른 나라 병원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긴장됐다. 한국어 통역이 있다길래 요청했더니 등록할 때 전화만 해주고 그 뒤로는 영어로 소통해야했다. 일요일이라 출근을 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피부과 의사도 없어 일반의로 진료를 받았다. 직원에게, 한국어 통역사에게, 간호사에게, 의사에게 내 증상을 계속 설명했다. 잇치잇치를 몇번이나 말했던가. 의사는 친절하게 세세한 문진을 해주셨다. 문제는 의사도 원인을 모른단다. 그러니까 베드버그 상처일 수도 있다는 것. 결코 믿고싶지 않았지만 베드버그라면 당장 옷과 가방부터 해결해야했다. 짐을 탈탈 털어 빨래를 하고 남은 바트를 세어가며 끼니를 해결하고 약을 먹었다. 잠시 여행의 낭만에 젖어있었는데 사는건 이리도 사소하고 볼품없다.

가족여행은 안식년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다. 화목한 가족의 상징인 가족여행. 성공한 자식의 상징인 효도여행. 한번쯤 흉내라도 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있었다.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가족 행사 말고는 셋이서 부천 밖을 나가본 기억이 거의 없다. 엄마도 나도 동생도 모두 백수인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일정을 맞춰 항공권부터 끊었다. 기꺼이 여행 플레너를 자처한 셈이 되었지만 사실 나는 이런 일에 젬병이다. 첫 가족여행의 성공 여부가 내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부담이 컸다. 그간의 태국 여행 경험치와 현저히 낮은 검색력을 총 동원하여 숙소를 몇번이나 검색하고, 예약했던 숙소를 바꾸기도 하고, 투어와 식당을 알아보며 가족들을 맞이할 태세를 갖췄다. 모든 가이드님들 존경합니다.

걱정과는 달리 여행은 평온했다. 몸과 마음이 피폐해가던 참에 가족들을 만나니 반갑고 든든했다. 집에서 각자 밥먹고 대화도 없이 지내던 사람들이 맞나 싶게 같이 구경하고 사진찍고 밥먹고 술마시고 수영했다. 잔뜩 긴장하여 신경이 때로 날카로워진 나를 엄마는 차분히 기다려주었고 동생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었다. 때로 의견이 엇갈렸으나 갈등은 심각하지 않았고 대체로 양보하며 지냈다. 원하는 게 다를 땐 따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집에서와 달리 서로 기분을 망치지 않으려 조심조심 했다. 아마도 짧은 여행이기에 가능했으리라. 각자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다.

이번 가족여행 가이드로서 몇가지를 평가해두어야겠다.
1 치앙마이 숙소는 가격대비 괜찮았고 무엇보다 우리 가족만 전세내듯 거실을 쓸 수 있어 좋았다. 위치는 좋지 않았다. 짧은 일정에 야시장을 구경하기 좋을 것 같아 나이트바자 근처로 정했으나 정작 야시장은 다들 관심없어 했다. 근처에 식당이 마땅치 않아 식사할 때 차를 타고 나가야 했고 유흥가 부근이라 분위기도 별로였다. 근처 산책을 좋아하는 엄마 취향을 고려하면 올드시티 쪽이 좋았겠다.
2 왓우몽과 반캉왓 일정은 실패. 왓우몽까진 좋았으나 반캉왓 걸어가는 길에 더위 먹어 다들 녹초가 되었었다. 한국인의 코스라는 미끄럼틀 카페도 갔는데 예쁜 사진 건지는 것 외엔 딱히 매력이 없었다.
3 그랩카 몬쨈 투어는 성공적이었다. 기사님이 영어를 잘 못해 소통이 어렵긴했지만 짧은 영어로 원하는 곳에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었다. 푸핀도이, 훼이텅타오 호수, 몬쨈 구경을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이맘때 태국 여행의 적은 더위인데 차량 에어컨과 시원한 풍경이 만족감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했다. 셋이나 넷이라면 가성비 괜찮은듯!
4 방콕 숙소는 비싸게 쓴 만큼 시설이 괜찮았고 다들 만족했다. 사먹느라 이용은 못했지만 주방도 잘 갖춰져 았었다. 조식도 괜찮았다. 옥상 수영장은 아담했지만 수영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 전세내듯 썼다. 엄마랑 동생이 수영을 좋아하지 않아 수영장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는데 막상 가보니 웬걸. 나보다 그 둘이 더 열심히 수영했다. 오후에 더위 식히며 여행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나나역, 아속역까지 셔틀도 편리했다. 다만 손님이 많아 정신이 없는 건지 청소를 부탁해야 해주었고 나나역 부근이 유흥가이고 주변 식당이 좀 비싸다는 점이 아쉬웠다.
5 방콕 왕궁 투어는 반나절 일정에 조금 비싸다 싶었고 더운데 괜찮을지 걱정이 많았다. 그래도 부모님과 여행할 땐 투어지! 하며 예약했는데 결과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우리 포함 총 세 그룹으로 인원이 많지 않았고 가이드님이 방콕의 여러 정보들도 잘 알려주셨다. 엄마는 눈을 반짝이며 비로소 진짜 여행을 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덥긴 했지만 오전 일정이어서 참을만 했다. 끝나고 카오산에서 갈비국수랑 마사지까지-이 전형적인 코스가 주는 안정감이란.
6 딸랏롯파이는 비가 와서 제대로 구경을 못했다. 짜뚜짝 시장은 엄마가 좋아했다. 방콕의 교통체증과 만원 지하철, 비싼 물가는 치앙마이를 절로 그립게 했다.
7 엄마를 행복하게 했던 망고. 동생을 행복하게 했던 태국 위스키. 숙소는 과일가게와 편의점 근처에 있어야 한다.
8 저가항공 예약할땐 수하물 규정을 꼼꼼히 체크하자. 미리 신청 못해 눈탱이 맞음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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