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01.24 방콕에서의 2박 3일

하루 종일 배와 버스에 갇혀 허전한 맘과 허기진 배로 도착한 방콕. 조용한 바다는 사라졌고 오토바이 소리 가득한 도시의 풍경에 다시금 긴장하게 된다. 비싸게 부르는 택시를 흥정할 새 없이 잡아타고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조용한 분위기의 한인 게스트하우스. 도미토리룸이지만 숙박객이 별로 없고 공간이 넓어 안락했다. 무엇보다 얼마만에 하는 온수샤워인지!

사장님은 조금 뚱하고 세침한 표정으로 챙겨주시는 분이다. 종일 밥을 못먹었다고 하니 선뜻 같이 먹자고 해주셔서 아주 맛있는 고기 구이를 먹게 되었다. 어제도 먹은 고기지만 쌈장과 김치를 곁들여 먹는 고기 맛이라니. 따오의 바다가 여전히 아른거리는 하루였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한 방콕의 밤도 참 좋았다. 코코넛워터 찬양. 술과 함께 마심 숙취가 없다고 추천받았는데 정말이었다. 꽤 마셨는데 아침에 개운하게 눈이 떠졌다.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오늘은 마사지나 받으며 뒹굴거려볼까 하던 참이었는데 공원갔다가 시장 구경 하라는 사장님의 제안으로 일행과 함께 가게 되었다. 무더위에 공원이 웬말인가 싶었는데 짜오프라야 강을 작은 배로 건널 때부터 생각이 달라졌다. 방콕의 복잡한 시내에서 벗어나 작은 마을로 들어가는 느낌. 강 한가운데 형성된 지형이라 그런지 늪지대를 둘러싼 공원이 있고 자전거를 빌려 돌아볼 수 있다. 오랜만의 자전거라 불안했지만 도전. 공원은 소풍나온 태국 아이들 말고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다. 나무와 늪지대로 우거져있어 그리 덥지 않았고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바람이 불어와 시원하기까지 했다. 이런 보물 같은 곳이라니 사장님 감사합니다!




이 곳의 이름은 방카차오. 방콕에 있다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시골 마을 같다. 공원을 나와 카페를 찾아가는 길은 다소 험난했다. 아주 좁고 구불구불 나있는 다리를 자전거로 통과해야 하는데 자전거에 미숙한 내가 운전하기엔 무리여서 몇번을 부딪힐 뻔 하고 내려서 끌고 갔다가 타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일행들은 아주 천천히 달려야했다. 힘들게 찾아간 카페는 과연 가볼 만 했다. 트리하우스란 이름을 가진 곳이었는데 숙소도 함께 운영한다. 강과 수풀을 배경으로 한 통유리 건물에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곳. 자전거에 지친 모두에게 천국같은 곳이었다. 수박주스와 점심을 아주 맛나게 먹었다. 허겁지겁 먹고 나니 졸음이 왔지만 쉬지 않고 다시 달렸다. 자전거를 반납하기 직전, 숯불 닭갈비 냄새와 비쥬얼에 유혹당해 먹고 가기로 했다. 손바닥만한 크기의 닭꼬치 하나에 10바트. 3개에 천원정도다. 뼈가 있어 먹기 힘들긴 했지만 아주 맛났다. 혼자였음 지나쳤을텐데, 일행들 덕분에 제대로 로컬 체험했다. 다시 시내로 나와 멋진 곳을 소개해주신 사장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장에 귤 사러갔다. 뜨롱터 시장인데 엄청 규모가 컸다. 청과물을 찾아 헤맨 덕분에 재래시장 곳곳을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MRT 타고 롯파이 야시장까지. 중간에 에어컨 쐬며 열 식힐 겸 맥도날드 콘파이도 먹었다. 야시장은 평일인데도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다. 더운 날 복닥이며 뜨거운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숙소에 돌아와 비오듯 흘린 땀을 씻어내고 해물찜과 맥주 한잔을! 태국 여행 열흘 중 가장 알차게 보낸 하루였다. 늘 혼자 뒹굴거리다가 우연치 않게 누군가와 종일을 같이 보낸 하루여서 특별하게 느껴졌다. 몸은 좀 피곤했지만 재밌었다. 방콕에서도 좋은 분들을 만난 덕분에 따오에서의 이별이 조금은 치유되었다. 방콕을 떠나는 날엔 통로 주변을 배회하며 보냈다. 카페에 드러누워 쉬기도 하고, 선물 쇼핑도 하고, 추천받은 빨간집 국수도 먹고, 마사지도 받았다. 마지막인만큼 고급 마사지샵에서 받아볼까도 했지만 예약을 안하고 갔더니 실패했다. 그래서 숙소 앞에 있는 타이거 마사지샵에 갔는데 완전 만족. 고급진 거 필요없다. 여행이 끝났다. 매일 마신 태국 맥주와도 안녕이다. 이번 여행은 계획한 게 많지 않아 부지런 떨지도, 열심히 할 필요가 없어서 좋았다. 오늘이 며칠인지 지금이 몇시인지 언제까지 뭘 해야 하는지 생각없이 살았다. 따오에 가서 다이빙 하는 것을 빼고는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 덕에 좀 심심했고 끼니를 놓친 적도 있고 돈을 허투루 쓰기도 했지만, 정말 좋았다. 그 덕에 다른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마음을 나누게 되어 더 좋았다. 한국은 어느 때보다 춥단다. 살을 에는 추위도 걱정이지만 마음이 차가워지는 게 더 두렵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웃을 일도, 처음 만난 사람들에게 용기 내어 다가가는 일도, 어제도 놀았는데 오늘도 놀고 내일도 놀 수 있는 날은 이제 당분간 없겠지. 돌아가서 해야하는 일들이 자꾸만 생각나 괴롭다. 멀리 떨어져 있어보니 그간 내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실감한다. 놀이에 빠져 조금만 놀다간다 떼 쓰는 어린아이처럼 사람들에게 푸념을 늘어놓고, 공항가는 택시에서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그믐이었던 밤하늘에 오늘은 반달이 떴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0131-0208 코타키나발루 4  (1) 2019.03.23
20190131-0208 코타키나발루 3  (4) 2019.03.01
20190131-0208 코타키나발루 2  (3) 2019.02.21
20190131-0208 코타키나발루 1  (0) 2019.02.19
20180114-24 방콕, 꼬따오 여행①  (0) 2019.02.13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