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1.31 안식년의 첫 여행

어쩌다 보니 안식년 시작을 여행으로 맞이하게 되었다. 별다른 준비나 기대 없이, 조금은 찜찜한 마음을 안고 떠나왔다. 그래도 늘 그랬듯이 막상 가면 좋을 것이다. 따뜻한 나라에서 좋은 풍경은 아무리 우울하고 사악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을 말랑하게 할 테니.

코타 키나발루. 노래만 부르던 이 곳을 여행지로 결정하게 된 건 오로지 항공비 때문이다. 설 연휴를 앞두고 떠나려니 모든 항공편이 두세배는 비싸고 거의 남아있는 게 없었다. 그나마 납득과 감당이 가능했던 게 코타키나발루였다. 바다가 있으니 뭐라도 할 수 있겠지란 생각으로 일단 예약했다. 그리고 나서 코타키나발루가 어떤 곳인지 찾아봤다. 말레이시아, 보르네오 섬 북부에 있는 관광지. 4천미터가 넘는 키나발루 산이 있는 곳. 다이빙을 하러 가지만 썬셋이 유명하다는 곳. 1년 내내 덥지만 한국 여름만큼은 아닌 곳. 시차는 한국보다 한시간 느리다. 한국에서 직항으로 다섯시간 넘게 걸린다.

​우리가 선택한 항공편은 에어서울 밤 비행기. 처음 타본다. 목요일과 금요일의 가격차이가 심해서 무리하더라도 목욜에 출발했다. 크기가 작고 모두가 동등한 이코노미 좌석이다. 저가항공스럽지 않게 usb 포트와 모니터(광고뿐인 화면이지만)가 있고 좌석 간격도 약간 넓다. 체크인을 좀 늦게 했더니 친구와 떨어져 앉게 되었다. (에어서울은 짐 부치기 전에 셀프체크인을 해야 한단다) 뭐 덕분에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앉자마자 곯아떨어져서 눈을 떴더니 이미 한참을 날고 있었다. 밤비행기 창가 좌석이 처음이었던가, 하늘에 무수히 많은 별이 보인다. 일상에선 존재하는데도 볼 수 없는 것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참 많다.

어찌 되었든 떠나왔으니 한국에서의 일들과 조금 멀어져보아야겠다. 일, 관계, 내 모습,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떨어져 있으면 보게 되는 것들,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있기도 하니까. 밤하늘의 별처럼. 돌이켜보면 삶은 당시엔 알아차리지 못하는 어떤 국면들로 방향이 정해지는 것 같다. 이 여행은 내 삶을 어디로 이끌어줄까. 두려움과 기대가 교차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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